위반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5년이 지나서 내려진 제재처분, 신의칙 위반으로 다툴 수 있을까?
- 권형필 변호사
- 2024년 11월 6일
- 4분 분량
판례 해설
이 사건 회사는 종합문화재수리업 등록을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보수 기술자격증을 대여받고 그 대가로 돈을 지급한 후 종합문화재 수리업과 건축공사업 등을 영위했다. 이후 그 사실이 밝혀지자 명의 대여인과 이 사건 회사, 그리고 그 대표이사는 문화재수리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각각 벌금 3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이후 감사원이 문화재청에 대해 감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그때까지 원고에게 이 사건 위반행위에 대한 아무런 제재처분을 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고, 그제서야 문화재청장은 피고에게 원고에 대한 제재처분을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문제는, 이러한 제재처분이 이 사건 위반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무려 6년이나 지난 후에서야 이뤄진 것이다. 이에 원고는 이 사건 제재처분이 신의칙 위반으로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행정처분의 적법성은 위반행위의 공익적인 목적과 개인에게 미치는 불이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내려져야 한다. 만약 관할관청이 제재처분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처분을 내리지 않았다면 원고로서는 당연히 더이상의 처분이 없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마련이다.
법원 역시 이러한 점을 지적하면서 '정당한 사유 없이 위반행위 종료일로부터 5년 이상 경과한 후에는 신의성실의 원칙상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상대방의 법적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침해하는 지나치게 과도한 처분'이라고 판단하였다.
법원 판단
행정법상 실권 또는 실효의 법리는 법의 일반원리인 신의성실의 원칙에 바탕을 둔 파생원칙인 것이므로 공법관계 가운데 관리관계는 물론이고 권력관계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그것은 본래 권리행사의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권리자가 장기간에 걸쳐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의무자인 상대방은 이미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할 것으로 믿을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게 되거나 행사하지 아니할 것으로 추인케 할 경우에 새삼스럽게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결과가 될 때 그 권리행사를 허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제재적 행정처분이 사회통념상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하였거나 남용하였는지의 여부는 처분 사유인 위반행위의 내용과 당해 처분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공익목적 및 이에 따르는 제반 사정 등을 객관적으로 심리하여 공익 침해의 정도와 그 처분으로 인하여 개인이 입게 될 불이익을 비교 교량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이러한 법리에 비추어 이 사건에 관하여 살펴보건대, 앞서 인정한 사실 및 앞서 든 각 증거 등에 의하여 알 수 있는 아래와 같은 여러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이 사건 처분은 신의성실의 원칙 등을 위반하거나, 달성하려는 공익에 비추어 원고가 입을 불이익이 지나치게 가혹하여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것이어서 위법하다고 판단된다.
1) 이 사건 처분은 이 사건 위반행위가 모두 종료한 2013년 6월경으로부터 약 6년 4개월이 경과한 2019. 10. 25.에야 이루어졌다. 그 지체된 기간은 이 사건 처분의 근거규정이 정한 영업정지기간 상한(3년)의 2배를 초과한다. 이 사건 위반사실을 인식하고 2016. 9. 6.경 명의 대여자인 I에게 자격정지 1년 처분을 하였으며 그 처분사실을 곧바로 관할관청인 피고에게 통보하였다. 그럼에도 감사원이 2018년 7월 경 문화재청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여 그 감사결과에 따라 문화재청장이 2019. 3. 6.경 피고에게 행정처분을 요구할 때까지, 관활관청이던 충남도지사나 피고 모두 이 사건 위반행위에 대하여 전혀 문제삼지 않았다.
그리하여 원고에게는 오린 기간 아무런 제재처분이 이루어지지 아니하였고, 원고는 이전과 같이 평온하게 종합문화재수리업과 건축공사업을 계속 영위하여 사업규모를 키워왔으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더 이상의 제재조치는 없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을 여지가 크다. 이러한 사정에서 새삼스럽게 원고에 대하여 약 6년 개월 전의 이 사건 위반행위를 이유로 영업정지라는 제재를 가하는 것은 원고의 신뢰이익과 법적안정성을 빼앗는 가혹한 결과가 된다.
(2) 원고가 수주하여 시공한 공사의 총 기성금액은 2016년에는 약 5억 원, 2017년에는 약 19억 원, 2018년에는 약 8억 원이었다가, 2019년에는 약 38억 원에 이르렀고, 2020년 7월까지는 수주한 총 공사 계약금액은 17억 원에 이르는 등 사업 규모가 꾸준히 증가하였다. 이처럼 원고의 사업규모가 지속적으로 확대됨으로써 이 사건 위반행위 당시보다 현재 이 사건 처분으로 입게 될 원고의 영업상 손실이 상대적으로 크게 증가하였다고 볼 수 있고, 이 사건 처분이 원고의 대외적인 신용과 신뢰도에 상당한 악영향을 주게 되는 점 등을 함께 고려하면, 원고가 장래 입게 될 무형의 불이익도 상당하다.
이에 비하여 이 사건 위반행위 후 6년 이상이 경과한 시점인데다가 위반행위 당시와는 원고의 주주와 경영자 등 내부 구성원이 대부분 교체된 상황 아래서는 이 사건 처분을 통하여 달성하려는 장래 위반행위를 예방한다는 공익은 그다지 크지 않다고 보인다.
(3) 이 사건 처분의 근거법률인 문화재수리법은 제49조에서 자격증 대여 등 위반행위를 한 업체에 대하여 영업정지 등 제재처분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제재처분의 제척기간에 관하여는 명시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관할관청이 아무런 시기적 제한 없이 오래 된 과거의 위반행위를 문제삼아 영업정지 등의 침익적 행정처분을 무제한적으로 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없다.
오히려 다음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비록 문화재수리법이 명시적으로 위반행위에 대한 제재처분의 제척기간을 두고 있지 않더라도, 관할관청이 제재처분을 할 수 있었음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위반행위 종료일로부터 5년 이상 경과한 후에는 신의성실의 원칙상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상대방의 법적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침해하는 지나치게 과도한 처분으로 보는 것이 법치행정의 원리에 부합한다고 할 것이다.
즉 ① 영업정지처분은 기업으로 하여금 일정 기간 일체의 영업활동을 중지하도록 하는 것으로서 과징금이나 과태료 등 금전의 부과나 입찰참가제한처분 등 기업에 대하여 행정청이 하는 영업취소를 제외한 다른 침익적 처분보다 침해의 정도가 크다. ② 행정청이 과거의 위반행위에 대하여 정당한 사유 없이 아무런 처분을 하지 않고 있다가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후 시기적인 제약 없이 영업정지처분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게 되면 행정청이 자의적으로 제재처분의 시기를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이에 따라 기업이 입는 실질적인 피해의 정도가 현저히 달라지게 됨으로써 책임주의에 위반될 여지가 커진다. ③ 이 사건 변론종결일 전인 2021. 3. 23. 시행된 행정기본법은 행정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국민의 법적 지위 안정을 도모하기 위하여 제23조에서 제재처분의 제척기간에 관하여 '법령 등의 위반행위가 종료된 날부터 5년이 지나면 해당 위반행위에 대하여 제재처분(인허가의 정지ㆍ취소ㆍ철회, 등록 말소, 영업소 폐쇄와 정지를 갈음하는 과징금 부과)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위 규정이 아직 시행 전이어서 이 사건에 직접 적용할 수 없지만 이러한 행정기본법 규정의 취지는 그 시행 전이라도 행정청이 재량권을 적절하게 행사하였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④ 원고와 같은 건설업자에게 적용되는 또 다른 법령인 건설산업기본법 제83조 제6호, 제84조의2 제2호는 국가기술자격증 등을 다른 자에게 빌려 건설업의 등록기준을 충족시킨 자에 대하여 건설업 등록을 말소하거나 1년 이내의 영업정지를 명할 수 있도록 하면서, 이에 대해서는 위반행위 종료일부터 5년의 기간이 지난 경우에는 영업정지, 과징금의 부과 또는 건설업 등록의 말소를 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하여, 이 사건과 유사한 자격증 대여행위에 대한 제재처분에 5년의 제척기간을 두고 있다(이는 2013. 6. 19.부터 시행되었다). 이러한 유사업종에 관한 법적 규율의 내용과 취지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제27조 제3항, 1항은 각 중앙관서의 장 또는 계약담당공무원은 담합 또는 관계 공무원에 대한 뇌물을 교부하는 행위를 제외한 일반 부정당행위에 대하여는 그 행위가 종료된 때로부터 5년이 지난 경우에는 입찰 참가자격을 제한할 수 없다고 규정하는 등 영업정지처분보다 침익성이 적은 입찰참가제한처분에 대해서도 5년의 제척기간을 두고 있다. 이러한 제척기간 조항 역시 행정청이 제재처분의 시기를 자의적으로 선택할 수 없도록 하여 국민의 예측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한 규정이다.
그럼에도 피고는 이러한 여러 사정에 대한 고려 없이 원고의 위반행위가 경과실에 불과하거나, 문화재의 피해가 경미하다는 사정 등만을 주로 고려하여 이 사건 처분을 하였다(갑 제14호증 참조).
(4) 이 사건 위반행위로 인하여 부실시공 등 문화재에 실질적인 피해를 초래하였다고 볼 자료는 없다. 또한 원고는 이 사건 위반행위 종료일부터 현재까지 문화재수리법 등의 법령 위반행위를 저지른 바 없다.
결국 원고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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